모두가 떠난 수술실에서

수술실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은, 아기의 첫 울음이 터진 다음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과 소리로 가득했다. 기계음, 짧은 지시, 그리고 그 모든 걸 뚫고 나온 "응애—". 산모는 회복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의료진도 하나둘 다음 일정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다 빠져나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방을 정리하는 건 대개 나 같은 간호사다.
텅 빈 수술실은 이상하게 크게 느껴진다.
조명을 조금 낮추고, 쓰던 기구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치우고, 다음 수술을 위해 방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방금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 자꾸 머문다. 조금 전 이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엄마가 되었고, 한 생명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는 것. 그게 매번 새삼스럽다.
12년을 일했는데도, 그렇다.
💬 “수술이 끝난 뒤 기구를 하나씩 정리하다 문득 분만실 쪽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에 잠시 손을 멈춘 적이 있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하루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늘 마음이 조금 뭉클해집니다.”
사람들은 수술실을 무섭고 차가운 곳으로 안다. 사실 맞다. 서늘하고, 조명은 하얗고, 낯선 기계가 가득하니까.
그런데 그 차가운 방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 지나간다. 겁에 질려 들어온 산모가 아기 울음소리에 눈물을 쏟고, 표정 없이 손을 움직이던 우리도 그 소리에 매번 목이 멘다. 그 온도차가, 나는 이 일의 가장 신기하고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리를 마치고 불을 끄기 전, 나는 가끔 텅 빈 수술대를 한 번 더 본다.
조금 전 이곳을 지나간 산모가, 지금쯤 회복실에서 아기를 만났을까. 그 생각을 하면 고단했던 하루가 조금 가벼워진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정리의 시간이, 사실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힘든 순간도 많지만, 한 생명이 세상에 처음 오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합니다.”
혹시 제왕절개를 앞두고 이 글을 읽는 예비 엄마가 있다면, 이것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수술실 문을 나선 뒤에도, 그 방엔 당신과 아기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 사람이 있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 아기의 첫 울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 수술실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당신을 지킨 마음은 결코 차갑지 않았다는 걸.
📎 함께 읽으면 좋아요: 수술실 문 앞에서, 산모들의 표정, 새벽 세 시에 걸려오는 전화,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어나던 그 순간
👉 구독하고 놓치지 마세요! 출산 그날까지 같이 준비해요 🤍
⚠️ 이 글은 수술실에서 일한 경험을 담은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의학적 진단·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 글쓴이 · 곁에있는간호사 지니 | 12년차 수술실·산부인과 간호사 (정식 간호사 면허 소지)
수술실에서 12년, 지금은 산부인과에서 일하며 현장에서 보고 겪은 정보를 나눕니다. 모든 의학 정보는 여러 차례 교차검증해 작성합니다.
👉 소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