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가 들어오기 전, 나는 손을 씻는다

산모가 수술실 문으로 들어올 때, 방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런데 그 '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정작 산모가 보지 못한다. 문이 열리기 훨씬 전, 아무도 없는 수술실에서 나는 혼자 손을 씻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 전 손 씻기는 생각보다 길다. 비누를 묻히고, 손톱 밑을 솔로 훑고, 손끝을 위로 든 채 팔꿈치까지 물을 흘려보낸다. 몇 분씩. 처음 이 일을 배울 때는 이 시간이 지루했다. 지금은 아니다. 이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소리만 나는 그 사이에, 나는 오늘 들어올 산모를 생각한다. 이름과 나이, 몇 번째 아기인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아직 얼굴도 못 봤지만, 이미 그 사람을 위한 준비가 내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손을 다 씻고 나면, 이제 도구를 편다.
멸균포를 펼치고, 기구를 순서대로 늘어놓고, 개수를 센다. 하나, 둘, 셋. 거즈도 센다. 이건 습관이 아니라 약속이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똑같이 세어서, 처음과 끝의 숫자가 맞아야 한다. 한 개도 틀리면 안 되는 셈. 이 방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예민한 일이다.
💬 “응급수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은 평소보다 더 긴장돼 준비하는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늘 같은 말을 되뇌었습니다. ‘익숙할수록 더 천천히, 하나도 놓치지 말자.’ 그 한 문장이 지금까지도 수술실에서 저를 가장 많이 붙잡아 주는 말입니다.”
기계를 켜고, 조명을 맞추고, 따뜻한 담요를 데워 둔다. 산모가 누울 자리에는 팔을 올릴 받침을 미리 벌려 둔다. 수술대는 아직 비어 있지만, 나는 그 빈자리를 향해 자꾸 움직인다. 마치 곧 올 사람을 위해 방을 데워 두는 것처럼.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준비는 거의 끝나 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산모가 들어온다. 낯선 천장, 낯선 기계,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은 조금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다. 자기를 위해 이미 한참 전부터 누군가 손을 씻고, 숫자를 세고, 담요를 데워 뒀다는 걸 ——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몰라도 된다.
준비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보이지 않는 데서 다 끝내 두고, 정작 그 사람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 시작할게요" 하고 웃는 것.
산모가 이 방에서 기억하는 건 아마 첫 울음소리, 차가운 공기, 누군가 잡아 준 손 정도일 것이다. 문이 열리기 전의 그 조용한 몇 분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모든 수술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손을 씻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 “수술 전 몇 분의 준비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출산을 안전하게 시작하는 시간이라, 저는 그 짧은 순간을 지금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 글은 수술실에서 일한 제 경험을 담은 이야기예요. 상황은 병원·환자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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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곁에있는간호사 지니 | 12년차 수술실·산부인과 간호사 (정식 간호사 면허 소지)
수술실에서 12년, 지금은 산부인과에서 일하며 현장에서 보고 겪은 정보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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