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세이 7

다리가 안 느껴져요 — 척추마취가 퍼지던 그 몇 분의 시간

"다리가… 다리가 안 느껴져요."수술이 시작되기 전, 나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척추마취가 막 퍼지기 시작한 산모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하는 말.제왕절개는 대부분 부분마취로 한다. 산모는 깨어 있고, 아기가 나오는 순간을 소리로 함께 맞는다. 좋은 방식이지만, 딱 하나 낯선 게 있다. 자기 몸의 절반이, 서서히 사라지는 감각. 마취약이 들어가면 처음엔 다리가 따뜻해진다. 그다음 무거워지고, 저릿해지고, 이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멀어진다. 분명 거기 있는데 만져도 남의 살 같은 느낌. 처음 겪는 사람에겐 그게 꽤 무섭다."제 다리가 없어진 것 같아요."그렇게 말하는 산모의 손을 나는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정상이에요. 마취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곧 아기 만날 거예요. 저 여기 있어요...

수술방 이야기 2026.07.14

수술실에 흐르던 노래

사람들은 수술실이 조용할 거라고 생각한다.차가운 금속, 하얀 불빛, 기계음. 영화에서 본 그런 장면. 물론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수술실엔 음악이 흐를 때가 많다.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어떤 날은 잔잔한 발라드, 어떤 날은 낡은 라디오에서 나올 법한 옛날 가요.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 노래를 배경으로 각자의 일을 한다. 기구를 세고, 장비를 맞추고, 짧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좀 낯설었다. 이렇게 긴장되는 곳에서 음악이라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 노래가 이 방을 조금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만들어 준다는 걸. 수술대에 누운 산모는 대개 긴장으로 굳어 있다. 낯선 천장, 처음 보는 사람들, 알 수 없는 기계 소리. 그럴 때 흐르는 ..

수술방 이야기 2026.07.11

산모가 들어오기 전, 나는 손을 씻는다

산모가 수술실 문으로 들어올 때, 방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그런데 그 '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정작 산모가 보지 못한다. 문이 열리기 훨씬 전, 아무도 없는 수술실에서 나는 혼자 손을 씻고 있기 때문이다.수술 전 손 씻기는 생각보다 길다. 비누를 묻히고, 손톱 밑을 솔로 훑고, 손끝을 위로 든 채 팔꿈치까지 물을 흘려보낸다. 몇 분씩. 처음 이 일을 배울 때는 이 시간이 지루했다. 지금은 아니다. 이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물소리만 나는 그 사이에, 나는 오늘 들어올 산모를 생각한다. 이름과 나이, 몇 번째 아기인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아직 얼굴도 못 봤지만, 이미 그 사람을 위한 준비가 내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손을 다 씻고 나면, 이제..

수술방 이야기 2026.07.09

세상에서 처음, 아기를 안는 손

세상에 갓 나온 아기를 가장 먼저 안는 사람은, 사실 엄마가 아닐 때가 많다.제왕절개 수술에서 아기가 배 밖으로 나오면, 그 작고 미끄러운 몸을 받아 안는 건 대개 나 같은 간호사의 손이다. 엄마는 파란 수술포 너머에 누워 아직 아기를 보지 못했고, 아빠는 그 곁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 짧은 순간, 아기와 세상 사이엔 내 두 손이 있다. 받아 안은 아기는 따뜻하고, 축축하고, 아직 조금 파랗다.얼른 마른 포로 몸을 감싸고, 등을 부드럽게 문지른다. 코와 입을 살피고, 숨을 쉬는지, 팔다리에 힘이 도는지 살핀다. 이 몇 초는 언제나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며 "응애—" 하고 첫 숨을 터뜨리면, 그제야 나도 참았던 숨을 함께 내쉰다. 파랗던 몸에 발그레한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방금 ..

수술방 이야기 2026.07.08

모두가 떠난 수술실에서

수술실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은, 아기의 첫 울음이 터진 다음이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과 소리로 가득했다. 기계음, 짧은 지시, 그리고 그 모든 걸 뚫고 나온 "응애—". 산모는 회복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의료진도 하나둘 다음 일정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다 빠져나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방을 정리하는 건 대개 나 같은 간호사다. 텅 빈 수술실은 이상하게 크게 느껴진다.조명을 조금 낮추고, 쓰던 기구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치우고, 다음 수술을 위해 방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방금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 자꾸 머문다. 조금 전 이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엄마가 되었고, 한 생명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는 것. 그게 매번 새삼스럽다.12년을 일했는데도, 그렇다.?..

수술방 이야기 2026.07.07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어나던 그 순간

수술방이 긴장으로 팽팽한 곳이라면, 회복실은 그 긴장이 풀리는 곳이에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간이죠.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천천히 걷히는, 짧지만 묘하게 따뜻한 시간이 거기 있어요.그 방에서 본 장면들 중에는, 한참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 것들이 있어요.📌 이 글은 「제왕절개 총정리」 시리즈의 한 부분이에요. 제왕절개 전체 흐름은 여기서 한눈에 볼 수 있어요 → 제왕절개 총정리 — 결정부터 회복까지, 간호사가 정리한 완벽 가이드마취는 한 번에 탁 깨는 게 아니에요. 안개가 천천히 걷히듯, 의식이 조금씩 돌아와요.처음엔 다들 멍해요. 춥다고 하시는 분도 많고요. 마취가 풀리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따뜻한 담요를 한 겹 더 덮어드려요. 모니터는 규칙적으로 삑, 삑 소리를 내고, 회..

수술방 이야기 2026.06.24

제왕절개 그날, 수술방 안의 풍경

수술방 앞에 선 산모들은 대체로 비슷해요. 보호자 손을 한 번 더 꼭 쥐고,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 그러고는 혼자서 그 문을 넘어요. 그 몇 초가 아마 가장 외로운 순간일 거예요.오늘은 그 문 너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그 안이 어떤 곳인지 알고 나면, 적어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덜어질 테니까요.📌 이 글은 「제왕절개 총정리」 시리즈의 한 부분이에요. 제왕절개 전체 흐름은 여기서 한눈에 볼 수 있어요 → 제왕절개 총정리 — 결정부터 회복까지, 간호사가 정리한 완벽 가이드들어오면 먼저 두 가지에 놀라요. 춥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많다는 것.방이 서늘한 건 이유가 있어요. 균이 자라기 어렵게, 기계들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그래서 일부러 온도를 낮춰둬요. 추우시면 말씀하시기 전에 ..

수술방 이야기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