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간호사 16

쌍둥이가 나오던 날

수술실에 처치대가 두 개 놓이는 날이 있다.그런 날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기가 조금 다르다.쌍둥이 제왕절개는 준비부터 두 배다.아기를 받을 자리를 하나 더 만들고, 온열등을 하나 더 켜고, 마른 포와 작은 모자를 두 세트 준비한다. 소아과 팀도 한 팀 더 온다. 좁은 수술실이 평소보다 북적이고, 사람들의 움직임에 묘한 긴장이 실린다.산모도 안다. 자기 배 속에 두 생명이 있다는 걸, 그 두 생명이 곧 동시에 세상에 나온다는 걸. 그래서 쌍둥이 산모의 눈은, 보통의 산모보다 조금 더 크게 떠 있다.첫 아기가 나온다."응애—." 첫 울음이 터지고, 첫 번째 처치대로 아기가 옮겨진다. 그런데 다른 수술과 달리, 그 순간 방 안의 긴장이 다 풀리지 않는다. 아직 한 명이 더 남아 있으니까.우리는 첫 아기를 살..

수술방 이야기 2026.07.25

담요 한 장의 온기

수술실에서 산모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거의 언제나 이거다."너무 추워요."수술실이 추운 데는 이유가 있다. 균이 자라기 어렵게, 기계들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우리는 가운을 겹쳐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견딜 만하지만, 수술포 하나만 덮고 누운 사람에게는 다르다.게다가 마취가 들어가면 몸이 스스로 체온을 지키는 힘이 떨어진다. 그래서 산모들은 이가 부딪히도록 떤다. 추워서 떨고, 무서워서 떨고, 그 둘이 섞여서 더 떤다.그래서 우리는 산모가 들어오기 전에 담요부터 데운다.수술실 한쪽에는 담요를 데워두는 보온장이 있다.문을 열면 훅 하고 더운 김이 올라온다. 그 안에서 담요를 한 장 꺼내 안으면, 잠깐이지만 내 팔도 따뜻해진다. 그걸 안고 수술대로 걸어가는 그 몇 걸음을 나는 좋아한다.그리고 덜덜 떨..

수술방 이야기 2026.07.24

수술실 밖, 남편이 기다리는 자리

수술실 안에서는 시간이 아주 빠르게 간다. 할 일이 계속 있으니까.그런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에서는 그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간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수술실 문 밖 복도에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다.제왕절개가 시작되면 그 자리에 남편이 앉는다. 대개는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앉았다 일어나 서성이고, 창밖을 봤다가, 다시 문을 본다. 어떤 사람은 휴대폰만 계속 들여다보는데, 실은 아무것도 안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화면이 꺼져 있는데도 계속 보고 있으니까.우리 병원은 수술실 안에 보호자가 함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 사람은, 아내가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혼자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도 모른 채로.안에서는 아기가 먼저 나온다."응애—" 하는 소리가 터지고, 방 안..

수술방 이야기 2026.07.21

다리가 안 느껴져요 — 척추마취가 퍼지던 그 몇 분의 시간

"다리가… 다리가 안 느껴져요."수술이 시작되기 전, 나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척추마취가 막 퍼지기 시작한 산모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하는 말.제왕절개는 대부분 부분마취로 한다. 산모는 깨어 있고, 아기가 나오는 순간을 소리로 함께 맞는다. 좋은 방식이지만, 딱 하나 낯선 게 있다. 자기 몸의 절반이, 서서히 사라지는 감각. 마취약이 들어가면 처음엔 다리가 따뜻해진다. 그다음 무거워지고, 저릿해지고, 이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멀어진다. 분명 거기 있는데 만져도 남의 살 같은 느낌. 처음 겪는 사람에겐 그게 꽤 무섭다."제 다리가 없어진 것 같아요."그렇게 말하는 산모의 손을 나는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정상이에요. 마취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곧 아기 만날 거예요. 저 여기 있어요...

수술방 이야기 2026.07.14

수술실에 흐르던 노래

사람들은 수술실이 조용할 거라고 생각한다.차가운 금속, 하얀 불빛, 기계음. 영화에서 본 그런 장면. 물론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수술실엔 음악이 흐를 때가 많다.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어떤 날은 잔잔한 발라드, 어떤 날은 낡은 라디오에서 나올 법한 옛날 가요.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 노래를 배경으로 각자의 일을 한다. 기구를 세고, 장비를 맞추고, 짧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좀 낯설었다. 이렇게 긴장되는 곳에서 음악이라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 노래가 이 방을 조금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만들어 준다는 걸.수술대에 누운 산모는 대개 긴장으로 굳어 있다. 낯선 천장, 처음 보는 사람들, 알 수 없는 기계 소리. 그럴 때 흐르는 익..

수술방 이야기 2026.07.11

산모가 들어오기 전, 나는 손을 씻는다

산모가 수술실 문으로 들어올 때, 방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그런데 그 '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정작 산모가 보지 못한다. 문이 열리기 훨씬 전, 아무도 없는 수술실에서 나는 혼자 손을 씻고 있기 때문이다.수술 전 손 씻기는 생각보다 길다. 비누를 묻히고, 손톱 밑을 솔로 훑고, 손끝을 위로 든 채 팔꿈치까지 물을 흘려보낸다. 몇 분씩. 처음 이 일을 배울 때는 이 시간이 지루했다. 지금은 아니다. 이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물소리만 나는 그 사이에, 나는 오늘 들어올 산모를 생각한다. 이름과 나이, 몇 번째 아기인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아직 얼굴도 못 봤지만, 이미 그 사람을 위한 준비가 내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손을 다 씻고 나면, 이제 ..

수술방 이야기 2026.07.09

세상에서 처음, 아기를 안는 손

세상에 갓 나온 아기를 가장 먼저 안는 사람은, 사실 엄마가 아닐 때가 많다.제왕절개 수술에서 아기가 배 밖으로 나오면, 그 작고 미끄러운 몸을 받아 안는 건 대개 나 같은 간호사의 손이다. 엄마는 파란 수술포 너머에 누워 아직 아기를 보지 못했고, 아빠는 그 곁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 짧은 순간, 아기와 세상 사이엔 내 두 손이 있다.받아 안은 아기는 따뜻하고, 축축하고, 아직 조금 파랗다.얼른 마른 포로 몸을 감싸고, 등을 부드럽게 문지른다. 코와 입을 살피고, 숨을 쉬는지, 팔다리에 힘이 도는지 살핀다. 이 몇 초는 언제나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며 "응애—" 하고 첫 숨을 터뜨리면, 그제야 나도 참았던 숨을 함께 내쉰다. 파랗던 몸에 발그레한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방금 이 ..

수술방 이야기 2026.07.08

모두가 떠난 수술실에서

수술실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은, 아기의 첫 울음이 터진 다음이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과 소리로 가득했다. 기계음, 짧은 지시, 그리고 그 모든 걸 뚫고 나온 "응애—". 산모는 회복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의료진도 하나둘 다음 일정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다 빠져나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방을 정리하는 건 대개 나 같은 간호사다.텅 빈 수술실은 이상하게 크게 느껴진다.조명을 조금 낮추고, 쓰던 기구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치우고, 다음 수술을 위해 방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방금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 자꾸 머문다. 조금 전 이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엄마가 되었고, 한 생명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는 것. 그게 매번 새삼스럽다.12년을 일했는데도, 그렇다.💬 ..

수술방 이야기 2026.07.07

새벽 세 시에 걸려오는 전화

당직을 서다 보면, 가장 깊이 잠든 시간에 전화가 울린다.새벽 세 시. 어둠 속에서 벨 소리 하나에 눈이 번쩍 뜨인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짧다. "응급 제왕절개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몸이 먼저 안다. 신발을 꿰고, 복도를 반쯤 뛰다시피 걸으면서 이미 머릿속으로는 준비할 것들이 지나간다.낮의 계획된 수술과 새벽의 응급은 공기가 다르다.낮에는 산모가 걸어 들어오고, 우리는 웃으며 이름을 묻고, 천천히 마취를 준비한다. 그런데 새벽 응급은 다르다. 무언가—태아 심장 박동이 떨어졌거나, 예상 못 한 일이 생겼거나—그 '무언가' 때문에 우리는 시간과 다툰다. 몇 분이 길게 느껴진다.그런데 신기한 건, 그 몇 분 사이에 텅 비었던 수술실이 순식간에 사람으로 채워진다는 거다. 방금 전까지 각자 다..

수술방 이야기 2026.07.06

수술실 문 앞에서, 산모들은 대체로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수술실 문은 자동문인데도, 열릴 때마다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진다.그 문이 열리고 이동식 침대가 미끄러져 들어올 때, 나는 기계나 차트보다 산모의 얼굴을 먼저 본다. 몇 년을 봐도 그 표정은 늘 비슷하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다 만, 눈만 유독 크게 뜬 얼굴. 천장을 향해 누워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 눈."많이 춥죠?"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대개는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끄덕인다.수술실이 추운 건 사실이다. 감염을 막으려 온도를 낮게 유지하니까. 그런데 산모들이 덜덜 떠는 이유의 절반은 추위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마취 때문이기도 하고, 무서워서이기도 하다. 곧 배를 열어 아기를 만난다는 일이, 기쁘면서도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수술대는 생각보다 좁다.산모를 옮겨 눕히고, 양팔을 십자가처럼 ..

수술방 이야기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