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이야기 3

다리가 안 느껴져요 — 척추마취가 퍼지던 그 몇 분의 시간

"다리가… 다리가 안 느껴져요."수술이 시작되기 전, 나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척추마취가 막 퍼지기 시작한 산모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하는 말.제왕절개는 대부분 부분마취로 한다. 산모는 깨어 있고, 아기가 나오는 순간을 소리로 함께 맞는다. 좋은 방식이지만, 딱 하나 낯선 게 있다. 자기 몸의 절반이, 서서히 사라지는 감각. 마취약이 들어가면 처음엔 다리가 따뜻해진다. 그다음 무거워지고, 저릿해지고, 이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멀어진다. 분명 거기 있는데 만져도 남의 살 같은 느낌. 처음 겪는 사람에겐 그게 꽤 무섭다."제 다리가 없어진 것 같아요."그렇게 말하는 산모의 손을 나는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정상이에요. 마취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곧 아기 만날 거예요. 저 여기 있어요...

수술방 이야기 2026.07.14

수술실에 흐르던 노래

사람들은 수술실이 조용할 거라고 생각한다.차가운 금속, 하얀 불빛, 기계음. 영화에서 본 그런 장면. 물론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수술실엔 음악이 흐를 때가 많다.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어떤 날은 잔잔한 발라드, 어떤 날은 낡은 라디오에서 나올 법한 옛날 가요.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 노래를 배경으로 각자의 일을 한다. 기구를 세고, 장비를 맞추고, 짧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좀 낯설었다. 이렇게 긴장되는 곳에서 음악이라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 노래가 이 방을 조금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만들어 준다는 걸.수술대에 누운 산모는 대개 긴장으로 굳어 있다. 낯선 천장, 처음 보는 사람들, 알 수 없는 기계 소리. 그럴 때 흐르는 익..

수술방 이야기 2026.07.11

산모가 들어오기 전, 나는 손을 씻는다

산모가 수술실 문으로 들어올 때, 방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그런데 그 '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정작 산모가 보지 못한다. 문이 열리기 훨씬 전, 아무도 없는 수술실에서 나는 혼자 손을 씻고 있기 때문이다.수술 전 손 씻기는 생각보다 길다. 비누를 묻히고, 손톱 밑을 솔로 훑고, 손끝을 위로 든 채 팔꿈치까지 물을 흘려보낸다. 몇 분씩. 처음 이 일을 배울 때는 이 시간이 지루했다. 지금은 아니다. 이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물소리만 나는 그 사이에, 나는 오늘 들어올 산모를 생각한다. 이름과 나이, 몇 번째 아기인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아직 얼굴도 못 봤지만, 이미 그 사람을 위한 준비가 내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손을 다 씻고 나면, 이제 ..

수술방 이야기 2026.07.09